차맛, 눈맛 음미하는 명승 사찰, 남양주 수종사 [ 2020년 중부일보, G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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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5-07-25 13:37 조회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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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차맛, 눈맛 음미하는 명승 사찰, 남양주 수종사
두물머리를 전망하는 최고의 영지
두물머리를 전망하는 최고의 영지
운길산 중턱에서 바라보는 양수리 일대는 정적이면서도 동적이고 온유하면서도 강직하다. 가늠할 수 없이 긴 시간, 한길로만 흘러온 북한강과 펀펀한 둔치 위에 일렁이는 억새들, 모난 데 없이 나직한 봉우리들은 200여 년전 다산 선생이 보았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룻배가 오가던 자리에는 여러 개의 다리가 놓였고 그 위로 기차와 자전거가 지나갈 뿐이다. 시선을 조금 더 멀리 던지면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류 지점, 두물머리가 보인다. 서로 다른 두 물길이 만나 한길이 되었지만 물살은 기복 없이 평안하고 고요하다. 강우가 유난했던 지난여름에는 꽤 거칠었을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다 자연의 순리일 따름이고 그 풍경이 딱히 재주를 부리는 것도 아닌데 시선은 오래도록 강산에 머무른다.
묵언(默言). 두물머리의 수려한 풍광이 내려다보이는 자리 한 귀퉁이, 그곳에 세워진 팻말의 단어는 단호하다. 삼킨 말은 마음에 새긴다. 고요가 깃든 자리에 바람이 스치고, 나뭇잎이 부딪히고, 이내 풍경(風磬)이 울린다. 이곳은 두물머리를 전망하는 최고의 영지(靈地), 운길산 중턱에 자리한 수종사다.
조선의 내로라는 차(茶) 애호가, 다산 정약용의 다실(茶室)
절의 역사는 지난 기사에서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고, 오롯이 여행자의 관점에서 볼 때 수종사는 그 내력보단 ‘지금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을 말할 때 보다 매력적이다. 고승이나 왕에 관련한 설화는 여느 고찰에나 전해져오기 마련이다. 해서 세조가 행차 중 종소리를 듣고 찾은 절이라 수종사(水鐘寺)로 불리게 되었다는 중창 설화는 그리 흥미롭지만은 않다. 재차 강조하면 수묵화처럼 근사한 풍경이 가파른 운악산을 올라 수종사를 찾게 하는 동기가 되겠고, 그 다음으로 다실 삼정헌에서 음미하는 차 한잔이 풍경 못지않은 끌림을 준다고 할 수 있겠다. 어디까지나 이미 경험해본 자의 소회에 지나지 않겠지만 수종사는 누구든 인생에 한번은 꼭 올만한 절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를 보장할 인물이 고승이나 왕이 아닌, 조선 후기 학자 다산 정약용이다. 사실 정약용은 단순히 ‘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는 너무나 입체적인 인물이다. 실학자, 개혁가, 신지식인, 과학자, 예술가 등의 다채로운 수식이 그의 이름 뒤에 따라붙기 때문이다. 다만 수종사에서의 다산(茶山)은 그의 호로 증명하듯 다인(茶人)의 타이틀이면 충분하다.
다산은 수종사가 자리한 남양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또 생을 마쳤다. 두물머리,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비옥한 땅에 다산의 생가와 무덤이 나란히 있다. 다산생태공원, 실학박물관 등이 조성되어 있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이다. 수종사까지 포함하면 남양주시 조안면 일대는 거대한 정약용 단지로 볼 수 있다. 다산에게 수종사는 ‘동네 절집’ 정도 되는 위치와 친밀감을 가진 절이다. 그가 차 마시기를 즐겼던 장소가 바로 수종사다. 다산(茶山)은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의 만덕산에서 따온 호다. 만덕산에 차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강진에서 차에 푹 빠졌다. 기록에 의하면 유배 훨씬 전부터 차를 즐겼다는데 차나무가 많고 차를 매개로 승려들과 교류했던 강진에서 본격적인 다선(茶禪)의 세계로 접어들었던 것 같다. 이때 만난 이가 초의선사다. 다산은 20살 어린 그에게 다도의 즐거움을 전도했다. 훗날 초의선사는 잘 알려졌듯 우리나라의 다도를 정립한 차의 선구자, 즉 한국의 다성(茶聖)이라 추앙받는 인물로 남았다. 다산이 초의선사에게는 ‘차의 스승’이나 다름없던 셈이다. 그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차담을 나누었던 장소 또한 수종사다. 오늘날, 방문객들은 다산과 초의선사처럼 차를 마시고 그들과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산사에서의 찰나, 일다경(一茶頃)을 즐긴다. 나누는 대화 없이도 밀도 있는 이 시간은 두 강이 자연스레 만나 한강이 되는 두물머리와 같다.
차 한 잔으로 마음을 씻는 시간
일주문과 불이문을 지나 해탈문을 거치면 곧바로 삼정헌(三鼎軒)의 측벽이 보이고 그 맞은편에 두꺼비 모양의 수각이 있다. 시원한 석간수의 맛이 달다. 초의선사도 ‘천하일품’이라고 인정한 물이다. 물맛이 좋으니 차맛도 뒤지지 않을 거란 기대가 생긴다. 삼정헌은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누구나 자유롭게 실내를 드나들 수 있는 다실로 도량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위치한다. 빼어난 경관을 객에게 내어준 부처님과 스님의 자비에 감사하다.
삼정헌은 선(禪), 시(詩), 차(茶)가 하나로 통하는 다실(茶室)이라는 의미로 지난 2000년에 주지 동산스님이 보시했다. 사찰을 찾은 이가 그저 편히 쉬었다 가면 된다는 의미로 찻값은 받지 않지 않는다. 방문객은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다기로 직접 잎차를 우려 마신다. 다도의 순서와 방법은 별도로 마련된 설명서에 자세히 적혀 있다. 보고 그대로 따르면 된다.
다실 안의 ‘자연방하(自然放下)’라 쓰인 편액이 눈에 띈다.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의미다. 우리를 우리로 분별하지 않고 자연과 하나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곳, 수종사에서는 크고 작은 걱정거리조차 사치로 느껴진다. 잠시나마 마음의 짐을 비우는 시간, 시선은 다시 두물머리를 향한다. 다실에서도 전면의 큰 창을 통해 양수리 일대 풍경을 볼 수 있다. 차맛도 눈맛도 좋아 한번 앉으면 좀처럼 일어나기 어렵다. 재촉하는 이는 없지만 그럼에도 자비로 내어준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다. 보시는 또다른 보시로 이어져 차를 마신 이들의 대다수가 불전함을 지나치지 않는다.
조선 왕실이 아끼던 사찰, 그 고졸한 정취
도량으로 들어서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앞서 소개한 불이문 쪽으로 들어오는 길이 있고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 쪽으로 진입하는 길이 있다. 어느 쪽으로 들어와도 탁 트인 장관에 시선이 닿기 마련이지만 절의 첫인상은 조금 다르다. 도량 전체가 한 눈에 잘 보이는 방향은 은행나무 쪽에서 들어섰을 때다.